어린이날이라는 것을 챙겨먹어(?) 본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이날이 설레인다. 나이 서른두살을 먹어도 나는 아직 어린이고 싶다. '어린이날' 이 어른과 어린자를 구분하고, 이것이 곧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일종의 '선긋기'라는 비판에 수긍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이 여전히 그립고, 어린이날이 그립다. 아니 나는 어쩌면 아직 어린이일지도 모른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사회적 기준으로 어른이기를 강요받았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우스운데, 이전까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담배와 술은 해서는 안됐으며, 코피를 쏟아 공부를 해야하는 어린 학생이었다가, 이내 대학생이 되고는 어른으로 승격(?)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내가 원한 선택이 아니었다. 대학은 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 순간 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다 컸구나' 하는 주변 어른들의 탄성에 스스로를 대견해 했을 뿐이다.
스무살인 당시 나는 아직 어린이였을 것이다. 나는 한번도 '어른되기' 혹은 '사회생활' 이라는 과목이나 내용을 학교에서 배워본적도 없었다. 대신 대학을 가야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공허한 말들만이 무한반복될 뿐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세월의 힘은 무자비하게도 나를 어른이라는 포지션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부터 어른인 척을 해야했다.
나에게 어른인 척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어른이 된 다른 친구들을 보고 거의 모든 것을 따라하게 되었다. 나의 말투나 행동, 생각들을 버리고 어른이라는 기준에 맞게 나의 모든것을 그들에게 혹은 그 사회적 시선들에 맞춰주어야 했다. 나는 처음에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여 기분 좋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것이 내 인생 같지 않았고 그런 척 하는 것도 썩 기분 좋지 않았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어른인 척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진짜 어른이 아니었고, 그저 어른인 척했다는 사실을 들켜버린다면 그들로 부터 소외되는 상황이 올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여전히 그런 척 하고 있고, 어른이 아닌것을 들키는 것이 두렵다는 사실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사회적 기준으로서의 '어른' 의 삶은 여전히 나에게 미지의 세계다. 혹자는 '니가 피터팬이냐' 하거나, 아직도 미숙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낭만적인 사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나나 당신이나 언제 '완벽한' 어른인 적이 있었는지.
나는 나를 비롯하여 세상에 어른인 척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기준에 턱걸이 하며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어른' 들 그들 모두가 안쓰럽다. 나는 '어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허상 혹은 틀 속에 사로잡혀 어린이로서의 자신을 숨기고 사는 내가 무척 가엾다.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오늘도 나라는 사람을 진짜 나로 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내 개성과 정체성을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364일 '어른의날' 을 10년 이상을 살았지만, 그 이상을 산다 해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나는 완전한 어른은 되진 못할 듯하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어린이날' 을 맞을 때면 나는 내안에 움크린 어린이를 위로한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와 우리 어른들을 위한 소중한 쉼표의 순간이라고.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사회적 기준으로 어른이기를 강요받았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우스운데, 이전까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담배와 술은 해서는 안됐으며, 코피를 쏟아 공부를 해야하는 어린 학생이었다가, 이내 대학생이 되고는 어른으로 승격(?)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내가 원한 선택이 아니었다. 대학은 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 순간 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다 컸구나' 하는 주변 어른들의 탄성에 스스로를 대견해 했을 뿐이다.
스무살인 당시 나는 아직 어린이였을 것이다. 나는 한번도 '어른되기' 혹은 '사회생활' 이라는 과목이나 내용을 학교에서 배워본적도 없었다. 대신 대학을 가야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공허한 말들만이 무한반복될 뿐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세월의 힘은 무자비하게도 나를 어른이라는 포지션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부터 어른인 척을 해야했다.
나에게 어른인 척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어른이 된 다른 친구들을 보고 거의 모든 것을 따라하게 되었다. 나의 말투나 행동, 생각들을 버리고 어른이라는 기준에 맞게 나의 모든것을 그들에게 혹은 그 사회적 시선들에 맞춰주어야 했다. 나는 처음에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여 기분 좋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것이 내 인생 같지 않았고 그런 척 하는 것도 썩 기분 좋지 않았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어른인 척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진짜 어른이 아니었고, 그저 어른인 척했다는 사실을 들켜버린다면 그들로 부터 소외되는 상황이 올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여전히 그런 척 하고 있고, 어른이 아닌것을 들키는 것이 두렵다는 사실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사회적 기준으로서의 '어른' 의 삶은 여전히 나에게 미지의 세계다. 혹자는 '니가 피터팬이냐' 하거나, 아직도 미숙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낭만적인 사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나나 당신이나 언제 '완벽한' 어른인 적이 있었는지.
나는 나를 비롯하여 세상에 어른인 척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기준에 턱걸이 하며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어른' 들 그들 모두가 안쓰럽다. 나는 '어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허상 혹은 틀 속에 사로잡혀 어린이로서의 자신을 숨기고 사는 내가 무척 가엾다.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오늘도 나라는 사람을 진짜 나로 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내 개성과 정체성을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364일 '어른의날' 을 10년 이상을 살았지만, 그 이상을 산다 해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나는 완전한 어른은 되진 못할 듯하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어린이날' 을 맞을 때면 나는 내안에 움크린 어린이를 위로한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와 우리 어른들을 위한 소중한 쉼표의 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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