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지부장과 조합원들의 당당한 제2의 투쟁을 기대하며
이미 한참 지난 일들이다.
언제 그랬냐는듯 세상은 또 조용하다.
헬기가 날아들고, 최루액이 투하되고, 불이 치솟고, 곤봉이 온몸을 후려치던 그 지옥같은 날들은 이제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도장공장에서 옥쇄파업을 마무리하고 나온 한상균지부장의 쓸쓸한 연행장면이다.
그날 그랬다. 12시에 노사가 협상을 시작했고, 협상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52:48이니 하는 숫자들의 보도가 넘쳐났고, 이윽고 노사의 협상내용 조인식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본관 팬스앞 소방본부의 기자회견장에 카메라 20대쯤 모여들었다.
기자들도 카메라 앞으로 오밀조밀 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에 노조와 사측이 함께 한다는 기자회견은 사측만의 기자회견으로 변경되었고, 노조측의 요구로 사측만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들은 아쉬운 마음에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한상균지부장이 그렇게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6시에 시작한다는 기자회견이 8시를 넘어섰다.
8시뉴스팀은 이미 낙종 비슷하게 되어버렸고,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기자회견을 시작한 것이다.
기자회견을 시작할 그 즈음 나는 한상균지부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상균지부장은 협상타결안에 사인을 마치고 유유히 연행길에 오른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회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넘어 본관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때 였다. 그가 나온것은.
어설프게나마 그의 옥쇄파업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싶었다.
아니 세상밖으로 나온 그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또 다른 한명의 기자만이 한상균지부장의 연행장면을 멀리서 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폰카로 찍어서 제대로 알아 볼 수 는 없지만, 주변 사측 직원들의 소란으로 알 수 있었다.
다른 기자들은 소란스러운 상황에 기자회견도중 뛰쳐나와 차를 타고 떠나는 뒷모습만을 관전해야 했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다. 한상균지부장이 밖으로 나오던 날은, 그 시각은.
사측 직원들의 욕설이 퍼부어졌고, 누군가는 그에게 온몸을 던져 달려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한꺼번에 약속이라도 한듯이 야유와 고성, 육탄돌격이 벌어지고
그리고는 연행되고 말았다.
'한상균이 이 XX 죽여버려'
그의 연행순간에 듣게된 소리는 동지들의 힘찬 응원이 아니라, 그렇게 사측직원의 폭언과 욕설이었다.
왜 그가 욕을 들어야 하는가. 왜 그가 옥쇄파업의 마지막을 그런 비난으로 맞아야 했는가.
그는 진짜 사측 직원들 혹은 그 안에 끼어있을 용역깡패들에게 정녕 죽일놈이었을까.
그는 마지막까지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공장에 절대 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우리의 투쟁도 옳지만, 회사가 죽어선 안된다고 했던 한상균지부장과 조합원들.
도장공장안의 모든 제품들이 못쓰게 되선 안된다고 단전됐던 상황에서
발전기를 돌려 공장을 살리고자 했던 것이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마음이었음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그들이 도장공장에 들어간것은 이렇듯 결국 다 죽자는 것이 아니라 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욕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왜 그의 투쟁이 그런 막말들속에 갇혀 훼손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는 마지막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장공장에서 나와 간단한 조사를 받고 평택역으로 온다던
조합원들이 차에서 개선장군처럼 내리면서
"이젠 어떤 싸움도 두렵지 않다" 던 '무적함대' 그 모습 그대로를 그 역시 간직했을 것이다.
단결투쟁가와 동지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던 야윈 그들의 힘찬 노래처럼
한상균 지부장과 그들의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장공장을 나오던날 마지막 공장안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향후 당당한 그의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이 역사에서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기를 또 희망한다.
한상균 지부장의 영장실질심사가 있는 오늘.
그의 알아볼 수 없는 연행장면을 공개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미 한참 지난 일들이다.
언제 그랬냐는듯 세상은 또 조용하다.
헬기가 날아들고, 최루액이 투하되고, 불이 치솟고, 곤봉이 온몸을 후려치던 그 지옥같은 날들은 이제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도장공장에서 옥쇄파업을 마무리하고 나온 한상균지부장의 쓸쓸한 연행장면이다.
그날 그랬다. 12시에 노사가 협상을 시작했고, 협상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52:48이니 하는 숫자들의 보도가 넘쳐났고, 이윽고 노사의 협상내용 조인식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본관 팬스앞 소방본부의 기자회견장에 카메라 20대쯤 모여들었다.
기자들도 카메라 앞으로 오밀조밀 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에 노조와 사측이 함께 한다는 기자회견은 사측만의 기자회견으로 변경되었고, 노조측의 요구로 사측만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들은 아쉬운 마음에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한상균지부장이 그렇게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6시에 시작한다는 기자회견이 8시를 넘어섰다.
8시뉴스팀은 이미 낙종 비슷하게 되어버렸고,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기자회견을 시작한 것이다.
기자회견을 시작할 그 즈음 나는 한상균지부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상균지부장은 협상타결안에 사인을 마치고 유유히 연행길에 오른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회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넘어 본관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때 였다. 그가 나온것은.
어설프게나마 그의 옥쇄파업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싶었다.
아니 세상밖으로 나온 그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또 다른 한명의 기자만이 한상균지부장의 연행장면을 멀리서 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폰카로 찍어서 제대로 알아 볼 수 는 없지만, 주변 사측 직원들의 소란으로 알 수 있었다.
다른 기자들은 소란스러운 상황에 기자회견도중 뛰쳐나와 차를 타고 떠나는 뒷모습만을 관전해야 했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다. 한상균지부장이 밖으로 나오던 날은, 그 시각은.
사측 직원들의 욕설이 퍼부어졌고, 누군가는 그에게 온몸을 던져 달려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한꺼번에 약속이라도 한듯이 야유와 고성, 육탄돌격이 벌어지고
그리고는 연행되고 말았다.
'한상균이 이 XX 죽여버려'
그의 연행순간에 듣게된 소리는 동지들의 힘찬 응원이 아니라, 그렇게 사측직원의 폭언과 욕설이었다.
왜 그가 욕을 들어야 하는가. 왜 그가 옥쇄파업의 마지막을 그런 비난으로 맞아야 했는가.
그는 진짜 사측 직원들 혹은 그 안에 끼어있을 용역깡패들에게 정녕 죽일놈이었을까.
그는 마지막까지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공장에 절대 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우리의 투쟁도 옳지만, 회사가 죽어선 안된다고 했던 한상균지부장과 조합원들.
도장공장안의 모든 제품들이 못쓰게 되선 안된다고 단전됐던 상황에서
발전기를 돌려 공장을 살리고자 했던 것이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마음이었음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그들이 도장공장에 들어간것은 이렇듯 결국 다 죽자는 것이 아니라 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욕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왜 그의 투쟁이 그런 막말들속에 갇혀 훼손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는 마지막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장공장에서 나와 간단한 조사를 받고 평택역으로 온다던
조합원들이 차에서 개선장군처럼 내리면서
"이젠 어떤 싸움도 두렵지 않다" 던 '무적함대' 그 모습 그대로를 그 역시 간직했을 것이다.
단결투쟁가와 동지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던 야윈 그들의 힘찬 노래처럼
한상균 지부장과 그들의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장공장을 나오던날 마지막 공장안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향후 당당한 그의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이 역사에서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기를 또 희망한다.
한상균 지부장의 영장실질심사가 있는 오늘.
그의 알아볼 수 없는 연행장면을 공개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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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2009/08/10 18:15 Modify/Delete Reply Address
힘내세요..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 머물것이며, 또 힘이 될것입니다.
고생많으셨는데 이고뇌의 시간은 언제 끝나려는지 마음속에 굳은 결의와 희망이 의지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